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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을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시작합시다

2017년 9월 26일
오늘의 본문

  • 경고를 조롱하는 자들 28:9~13
  •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
  • 시온의 기촛돌 28:14~22
  • 이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 나는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 너희가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
  • 그것이 지나갈 때마다 너희를 잡을 것이니 아침마다 지나가며 주야로 지나가리니 소식을 깨닫는 것이 오직 두려움이라
  •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 대저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진노하사 자기의 일을 행하시리니 그의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의 사역을 이루시리니 그의 사역이 기이할 것임이라
  • 그러므로 너희는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단단해질까 하노라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느니라

묵상하기

개인적으로 구약을 묵상할 때 눈에 거슬리는 단어가 있습니다. "공의"와 "정의" 혹은 "압제"와 같은 것들입니다. 마치 대학시절에 민주화 운동을 하단던 학생들의 입에서나 나올 듯한 단어들이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단어일 수도 있습니다. 정의란 무엇일까... 공의란 무엇일까... 고민을 별로 해 보지 않습니다. 설교단에서 공의와 정의를 설교한다면 그 교회는 소위 진보적이고 사회적인 교회로 쉽게 규정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아" 자기의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의와 공의를 기준으로 하여 하시는 일은 우리 눈에는 기이하며 독특하게 보일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어떻게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먼저는 정의와 공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먼저 "의"라는 단어에서 시작합니다. 의는 사적인, 개인적인 영역에서 적용됩니다. 의라는 단어의 어원적인 의미는 자기를 지킬줄 아는 능력입니다.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것을 포함해서 이 세상의 혼란과 어지러움 속에서도 자기 마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유지하는 능력. 이런 의미에서 노아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개인적인 의는 동양에서도 언급됩니다. "내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남의 잘못을 미워해 내가 그 동일한 잘못을 행하지 않도록 경계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맹자는 "의"를 설명합니다. 이 의는 우리가 태어날 때,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태어나는 양심이 그 핵심일 수도 있고, 이 양심을 잘 훈련하고 경작하여 내가 맺는 사적인 관계에 적용해 어질고, 예의있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의를 추구하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정의는 무엇일까요?
바른 의라는 표현인데...  모든 의는 이미 바른 것이 아닐까요?  정의라는 단어는 영어로 righteousness라는단어와 justice라는 단어로 표현되는데... righteousness는  도덕적, 종교적, 윤리적인 의(옳음)이라면, justice는 법적인 의(옳음)를 의미합니다. righteousness는 개인적인 덕목이라면, justice는 사회적인 그리고 공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덕목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는 righteousness나 justice라는 번역이 동일한 한 단어입니다.  즉 구약에서 정의는 사람들 사이에 공통된 도덕과 윤리를 바탕으로 서로의 관계를 신뢰와 상생의 삶을 살게 하는 덕목입니다. 
이 정의의 핵심은 공감함에 있습니다. 강도를 만나 쓰러져 있는 이를 보고 그의 아픔과 상실에 공감하고, 그 현실에 개입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삶이 이 정의로운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공의는 공평한 법, 사회적 제도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법을 의미합니다. 
이 공의는 명시적인 법에 근거하여 집행되는 의(옳음)이니, 이 법에 근거하여 해동을 판단하는 공적인 심판과정이 뒤따르게 됩니다.  곧 공의는 옮음과 공평,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인 행동의 과정과 그 결과를 지칭합니다.  
하나님께서 공의의 하나님이라 할 때,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법을 제시하고 그 법을 따라 살 것을 명령하신 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법을 따라 살지 않는 사람들을 재판하고 그 판결을 내리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내 삶에서 하나님과 내 자신과의 관계속에서 추구되는 의
내가 타인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삶을 스치며 엿보듯이 보게 되는 상황과 관계 속에서 그들이 잘 살고 행복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내 관심과 동참을 표현해 내는 사회적이지만 여전히 내 개인적인 의가 정의라고 한다면
내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인 시스템과 제도를 통해서 약자와 피해자들이 보호 받고, 강한 자들이 규제될 수 있는 구체적인 법, 공적인 과정을 만들어, 따르고 따르게 하는 사회적으로 제도화된 의가 공의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평가는 이 세 종류의 '옳음'이 모두 망가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정글과 같은 사회가 되여, 자신을 자랑하고 오만한 이들이 약자들의 눈물을 마시고, 그들의 희생을 먹고 배부른 현실이 된 것입니다. 결국 그곳에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과 그 분이 운영하시는 심판의 과정이 그리고 그 결과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내가 정글의 맨 꼭대기에 있다면 회개의 요청이며
내가 정글의 맨 밑에서 잡초처럼 뜯기는 먹이사슬의 맨처음의 삶이라면
하나님의 오심은 정의와 공의를 이루는 소망이니 오늘을 견디라는 것입니다.
회개나 견딤은 모두 하나님을 향해 서 있는 내 마음의 옮음... 이 시대를 거부하여 내 자신을 분리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는 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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