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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을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시작합시다

2017년 12월 5일
오늘의 본문

요나의 불만 4:1~3
  • 1

  •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 2

  •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 3

  •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 하나님의 교훈 4:4~11
  • 4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 5

  •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 6

  •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 7

  •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 8

  •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 9

  •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 10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 11

  •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묵상하기

제 아이들이 어리던 시절에, 소위 사역자라는 이유로 주일학교나 제 아이들 또래가 모여 있는 상황에서 저희 아이들보다 다른 아이들을 먼저 챙기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제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함께 교회 친교실의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 제가 가져다 주는 밥의 맨 마지막 대상은 제 아이이곤 했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자라 청년부가 되었지만, 여전히 청년부가 모여서 무엇인가 필요할 때, 제 아이들에게 제일 나중에 관심을 표현하는 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가끔씩,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버지의 관심과 행동이 자신에게 제일 늦게 표현되는 상황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해되었을까? 생각이 들며,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늦게 오는 아버지의 관심'이 아이에게 혹여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까... 혼자 마음을 조릴 때도 있습니다. 드물지만 아이들이 표현해 내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행동을 볼 때면 괜시리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처럼 괜시리 미안해하는 제 마음을 보면... 저 스스로도 뭔가 찔리는게 있나 봅니다. 아버지를 이해해 주기를... 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목사를 아버지로 둔 아이들의 어깨에 놓여져 있는-자신들의 선택이 아니라- 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PK니 MK니라는 단어를 쓰며, 그들을 위한 사역들이 있나봅니다.

요나의 불평은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위대한 고백입니다.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사 그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마치 모세를 당신의 손으로 덮으시고 지나가신 뒷 모습과 함께 들려오는 하나님에 대한 계시의 내용이며, 요나 당시 사람들이 쉽게 고백하지 않았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역시 요나입니다. 

요즘의 상황을 보면서, 내 답답한 상황을 보면서, 대림절에 주님을 기다리면서...
내 안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 내 삶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기적이거나 기복적 신앙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광야에서 물을 내시던 하나님을 알고 믿기 때문입니다. 병자들을 고치시고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며 물 위를 걸으시던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믿음의 경험이 왜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냐"가 아닐까 싶습니다.
요나의 불평의 핵심은 "그 사랑의 하나님이 왜 나와 내 백성이 아니라 느니웨, 우리의 적.에게 나타나십니까?"라는 것이죠.

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내가 하나님이니까"입니다. "너와 네 백성이 나의 것인 것처럼, 니느웨도 나의 것"이니까... 하나님은 한 걸음 더나가셔서 니느웨의 십이만의 거주만들에 그 가축들까지 더 하십니다. 

오늘 아침에 나를 당황케 하는 하나님의 질문은
"나는 하나님이니.... 내가 사랑하는 너에게 오히려 마지막에 관심과 마음을 표현하게 되는구나... 내 아들이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처럼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것을 이해하고, 너에게 맨 나중에 돌아오는 나를 여전히 사랑의 아버지라 고백할 수 있겠느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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