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여정의 중반에 접어들어 다시 한번 길이 닫혔다.
너무도 지독해서 꼭 죽을 것 같았다.
병적 우울증이라는 캄캄한 숲에 빠져들어 빛도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4, 5년이 걸려 그 어둠 속을 빠져 나온 후
나는 그 시간이 자아와 소명을 향한 나의 순례 여행에서
얼마나 중요한 순간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상처 입은 치료자
헨리 나우웬은 많은 시간을 어둠 속에서 보낸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좀 더 마음을 열고 기꺼이 상처를 보이라고 충고했다.
우울증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어떤 경우는 유전적이거나 생리적인 것이어서 약물치료가 필요하다.
어떤 경우는 상황 때문에 생긴 것으로 정신 작용을 통해
자기 인식이나 선택, 변화를 일으켜야 할 때도 있다.
내 우울증의 경우는 잠깐 약물치료가 필요했지만
주로 상황 때문이었다.
나는 사십대에 들어 두 번이나 몇 달씩 영혼의 수렁에 빠지는 경험을 했다.
하루하루, 매 시간 죽고 싶은 욕망과 싸웠다.
인생은 괴롭고 고달프다는 생각 뿐이었다.
삶을 지탱하려는 모든 노력도 쓸데없는 것으로만 보였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에게는 진실을 얘기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울증은 종교적이든 과학적이든 어떤 가치에서 나오는 도식적으고 단순한 대답 대신
우리 문화가 무시하는 신비를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신비는 사람 마음 속 깊은 경험 하나 하나를 둘러싸고 있다.
자기 마음의 어둠 또는 빛을 향해 깊이 들어갈 수록
우리는 신의 궁극적인 신비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신비는 결코 다 설명되거나 다 풀리는 것이 아니다.
신비의 해결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우울증의 신비를 받아들이는 것이 수동적인 행동이거나 포기는 아니다.
낯설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깊은 곳의 자기 자아의 힘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그것은 기다림이며 지켜보는 것이다.
귀 기울이는 것, 고통을 겪어내는 것,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가능한대로 자기에 대한 지식을 수집하는 과정이다. 그런 다음 그 지식을 바탕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매일 매일 자기 자아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을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버림으로써 다시금 건강한 삶으로 한 걸음씩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지식은 지적이고 분석적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완전하게 하는 것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완전함으로 이끄는 그 선택은
실용적이거나 계산되는 것이 아니며
어떤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개인적 진실을 간단하면서도 심오하게 표현해 주는 것이다.
힘든 길이다...
나는 그 길을 두 번이나 걸어야만 했다.
첫째에 알게 된 나 자신의 모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가 알게 된 것을 거부했고 필요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 대가는 지옥의 경험을 한번 더 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