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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고통에 다가가기
우울증은 관계 단절의 극단적 상태이다.
우울증은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생명선인 관계성을 끊어 버린다.

이상하게도 내가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
나를 잠깐 찾아왔던 어떤 사람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의 나는 누가 곁에 있고 누가 없었는지도 잘 알 수 없을 정도였느데도 말이다.

호의를 가지고 나를 찾아왔던 그들
그들의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의 행동은 '욥의 위안자'와 같았다.
비참한 처지의 욥을 찾아와 '동정'을 보여 욥을 더 깊은 절망으로 빠뜨린 친구들처럼...

감사하게도 치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내 켵에 함께 있어 줄 용기를 가진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다.
빌이라는 친구는 내 허락을 받아
매일 오후 우리 집에 들러서 나를 의자에 앉히고는
내 앞에 무릎을 꿇어 앉아 신발과 양말을 벗긴 다음
30분 동안 발 마사지를 해 주었다.
그는 아직 감각이 살아 있는 내 신체 중에 한 부분,
그래서 사람들과 다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낸 것이다.
빌은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어쩌다 말을 할 때도 충고보다는 그저 자기가 느끼는 내 상태를 말해 주었다.

누군가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그것은 자신이 소멸되고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을 경험하게 하는 이에게는 생명을 주는 일이다. 그의 행동을 통해 나는 예수님이 발을 씻어 준다는 성경의 이야기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내 내면을 거짓 위로나 충고로 침범하지 않았다.
고통받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고치는게 아니라
함께 고통받음으로써 우리에게 힘을 주는 것이다.

놀랍게도 첫번째 우울증에 빠져 잠 못 이루던 한밤 중에 그 사랑의 신호를 받았다.
"너를 사랑한다, 파커"
그 말은 내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니라 내면에서 조용히 우러나는 소리였다.
나의 에고에서 나오는 소리도 아니였다.
나의 에고는 그런 말을 하기에는 자기에 대한 미움과 절망 때문에 너무 지쳐 있었다.
말할 수 없는 은총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우울증의 상처가 너무나 깊어 나는 그만 그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순간은 흔적을 남겼다.
사실 이 엄청난 선물을 거절했던 나는 그 당시 내가 얼마나 간절한 도움을 필요로 했었는지를 절감하게 한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나약하고 허약함의 표시처럼 느껴졌다.
또한 정말 전문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존재의 궁극적인 실체, 본성에 대해서 믿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비로운 마음을 가진 그런 전문가 말이다.
두명의 정신과 의사를 만났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들은 약물에 의존하며 내면의 삶을 무시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다른 카운슬러와의 만남은 내가 생각하던 그런 종류의 영적 여행이 아니였다.
나의 여행의 방향은 아래로 아래로
지옥 구덩이의 내부를 향해가며 그곳에 있는 괴물과 차례차례 만나는 식이었다.
"당신은 우울증을 당신을 망가뜨리려는 적의 손아귀로 보는 것 같군요. 그러지 말고 당신을 안전한 땅으로 내려서게 하려는 친구의 손길로 생각할 수 있겠어요?"
우울증을 친구로 생각하라는 제안은 참 모욕적이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내 안의 무언가는 알고 있었다.
아래로, 땅으로 내려서는 것이 완전함의 방향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이미지를 받아들이자 나는 서서히 치유되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기반이 없는 땅 즉 안전하지 않은 높은 곳에다 발을 딛고 살고 있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높은 고도에서 선다는 것은
미끄러지면 길고 긴 추락의 시간을 거쳐 바닥에 떨어지며 간혹은 목숨을 잃기도 한다는 것이다. 땅으로 내려서는 것은 축복인 것도 간단하다. 미끄러져 넘어져도 그것은 대개 치명적인 것이 아니면 곧 회복할 수 있다.

내가 그렇게 높은 곳에 살게 된 데는 최소한 4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1) 나는 지성인으로서 생각하는 것 뿐만 아니라 주로 신체 중에서 땅에서 제일 멀리 떨어진 곳 즉 머리속에서 살도록 훈련받아 왔기 때문이다.
2) 나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경험하기 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에 더 열중했다. 말씀이 육신이 된 믿음을 가지고 그렇게 육체 없는 개념들에 매달려 왔다니...
3) 높아진 나의 에고 때문이다. 우쭐해진 에고는 실제보다 나를 더 대단한 존재로 생각하도록 했다.
4) 마지막으로 나의 왜곡된 도덕률이다. 진실되고 현실에서 가능하며 내게 참된 생명을 주는 나의 진짜 모습을 살펴보기보다는 내가 되어야 하는 사람, 내가 되어야 하는 어떤 것의 이미지에 따라 살도록 이끌렸다.

오랫동안 그런 '해야 하는 것들'이 내 인생의 추진력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상에 나를 맞추지 못하자 나는 스스로를 나약하고 믿지 못할 사람으로 보게 된 것이다.

우울증은 나를 안전한 땅, 한계와 재능, 약점과 강점, 어둠과 빛이 복잡하게 뒤섰여 있는 나의 진실, 나의 본성의 땅 위로 내려서게 하는 친구의 손이었다. 내 참자아의 손,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실 때 당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시면서 내 안에 심어 놓은 바로 그 자아가 우울증이라는 어둠의 여행을 통해 나를 만나주었다. 참된 친구로서....

그 친구에게 마침내 돌아서서 "원하는게 뭐야?"라고 질문을 던졌다.
답은 분명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 지옥으로의 추락을 자아를 향한 여행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나는 하나님이 저 하늘 위 어디엔가에 있는 존재라고 상상했다.
하나님은 '존재의 토양'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님에게 이르는 길은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가는 것임을 이해하기 전까지 나는 땅 아래, 그 지하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땅 밑 세계는 위험하지만 우울증이 우리를 그곳으로 이끌고 가 참제적인 생명을 준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아란 분리되거나 특별하거나 우월한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의 혼합체
빛과 어둠의 혼합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그곳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인간다운 정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영적 여행은 역설로 가득하다.
겸손은 우리를 낮은 곳으로 이끈다. 그곳은 서 있어도 안전하고 넘어저도 괜챦은 땅이다. 겸손은 그 안에서 더 확고하고 충만한 자아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우울증에서 빠져 나온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내 대답은 하나 뿐이다.
"처음으로 내 모습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며 편안한 느낌을 누리고 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약함과 강함, 약점과 재능, 어둠과 빛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이제 나는 완전해진다는 것이 그 중 어느 하나도 거절하지 않고 포용하는 것임을 안다. 내가 나의 진실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을 때 진실 이상의 것들이 나의 일과 관계에서 유용한 것으로 다가 왔다. 이제 나는 사람이 자기의 참자아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결국은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약점과 치부, 어둠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그런 것때문에 내가 흔들리는 일이 줄어든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원하는 것은 내 자아의 일부로 알아달라는 것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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