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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넉넉함
날씨가 무덥습니다.  저희는 2층에 있는 방들을 시원하게 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거실은 에어콘이 있어서 괜찮은데, 일층의 차가운 공기가 윗층으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래도 찜통같은 자기 방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땀을 뻘뻘흘리면서도 자기 방 안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엄마, 아빠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더위에 땀을 흘리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생은 B와 D사이의 C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B는 출생을 의미하는 Birth이고, D는 죽음을 의미하는 Death입니다. C는 선택을 의미하는 Choice입니다. 우리 인생은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순간들의 연속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즉 우리의 선택은 객관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나은 선택을 위해서 고민하지만, 사실은 잘 모릅니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모든 요소들을 다 파악하거나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하고 나면, 오히려 잠을 자지 못하기도 합니다.

오타와에 처음 와서 차를 사거나, 집을 산 후에 내 몸과 마음의 반응을 회상해 보십시요. 잘 산 것인지.... 좋은 가격에 산 것인지... 결정하기 전보다 결정한 후에 마음이 더 복잡해지는 이유는 내 스스로 내 결정이 최선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인터넷을 통해 비슷한 차나 집들의 가격을 더 살펴보고, 더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에이...” 라는 말과 함께,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기로 결심하고, 생각을 멈춥니다.

마음이라고 하는 곳은 공항의 관제탑처럼 콘트롤 타워 역할을 합니다. 서로 다른 생각들을 향하여 이륙과 착륙을 명령하는 곳입니다. 이 마음은 생각이라는 비행기를 만들어내는 공장이 아닙니다.  1분에 여러대의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공항일지라도, 비행기는 이미 그곳에 와 있습니다. 생각이나 상황이라고 하는 것은 이 비행기들처럼 이미 우리 주변과 마음 위를 날아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생각을 내 마음의 활주로에 착륙하게 하고, 어떤 생각을 떠나 보낼 것인가입니다.

그러면, 관제사들은 어떻게 여러 비행기들의 이착륙의 순서를 정할까요? 그 결정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 지식이 없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 봤지만 구체적인 기준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조종사들과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과 “관제사 개인의 상황 판단과 빠른 결정”에 의해서라고만 적혀 있습니다. 절대원칙은 비행기들은 관제탑의 지시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판단이라고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최선의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다분히 “자기도취적” 인 오해입니다.  우리의 결정이 어떤 이론적이고, 합리적인 설명이나 순서를 따른 다는 생각도 사실은 환상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위대하거나, 현명하지 않습니다. 순간의 선택이나 어떤 행동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되고 난 후에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생각없이 그냥 했다는 말이 최고의 변명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 “최선”이라는 말보다  “그냥”이라는 말이 맞는 말일 때가 더 많습니다.

행동에 대한 무책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한계에 대한 인정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이 바르거나 절대적이지 않다는 인정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내어 놓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른 이들을 향해 용납과 인정이 우선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이 필요한 상황이 많이 있습니다. 내 자신을 향해서도 그렇고, 타인을 향해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만 순간 순간의 선택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지금, 여기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 신앙인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