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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죽음
나이가 들었음을 언제 느끼십니까?
몸이 예전과 같지 않을 때, 나이가 들었슴을 실감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자라서 출가하고, 어느날 문뜩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 혼자 미소지을 때도 내 나이가 차곡차곡 쌓여 있음을 봅니다. 무엇보다 젊은 친구들과 대화가 안되거나, 대화의 초점이나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내가 구닥다리가 되어가는 구나’라고 느낍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이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그만큼 삶의 여러 정황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경험만큼 지혜가 있다는 뜻입니다. 캐나다 원주민들이 “Elder”라고 부르는 부족의 어른들은 바로 이 지혜로운 현자를 의미합니다. 캐나다에서 사귄 몇 안되는 원주민 친구들 중에는 상당한 위치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자신은 아직 Elder라는 호칭을 감당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이도 있습니다.
저보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교회에 많은데 이런 이야기를 해서 좀 죄송하기도 하지만, 요즘 “지금까지 산 날이 앞으로 살날보다 많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합니다.  머리가 조금만 아파도, 뒷목이 조금만 땡겨도, 아침에 일어나는데 종아리 근육에서 긴장이 느껴지면... 건강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나이로 연결되는 것을 봅니다.

몇 달전에 “죽음”에 대한 세미나에 참석하여, “내 자신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깊이 묵상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사고가 난’ 상황에서 죽음으로 항상 생각이 된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마지막 순간은 병실의 침대 위에서 온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평안하게 눈을 감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머리 맡에 자기가 사랑하는 고양이가 앉아있는 모습을 연상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죽음을 생각하면 항상 혼자있습니다. 다가오는 내 죽음을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경험했던, 집에서 키우던 동물들이 죽음이 가까와지면 홀연히 살아져 버리던 기억이 선합니다. 슬픈 순간이 아니라, 혼자서 건너야 하고, 혼자서 경험해야 하는 “단독자”로서의 경험이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내 가족을 포함한 이 세상은 내 죽음과는 상관없이 돌아갑니다. 내 죽음 또한 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니까요.

제가 정말로 두려워 하는 것은 육체의 죽음이 아닙니다. 
두려워 하는 죽음의 첫째는 살아있는 동안 내 마음이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마음이 죽어버리면, 요즘 유행하는 좀비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이 없어지고,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 상실되고, 반성과 성찰을 하는 능력이 멈춰 버립니다. 
두번째 두려워하는 죽음은 관계의 죽음입니다. 내가 목회하는 교우들에게 돌보다 더 무의미한 존재가 되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단순히 그림차나 형체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두려워 합니다. 교인들에게 목사의 의미는 그 교회에 목사로 있는 순간만큼만 존재한다는 말은 참 슬픕니다. 
마지막으로 두려워하는 죽음은 내 영혼의 죽음입니다. 이 영혼은 나라고 하는 육체 속에 있는 단순히 보이지 않는 어떤 신비적인 부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김경웅”이라고 하는 내 전존재를 의미합니다. 80여 평생을 이 땅에서 살면서 크고 작은 일을 경험하면서도 생명을 놓치않고 버티고, 묵묵히 걸어왔던 나라고 하는 존재가 실재하였고, 나름 그대로 의미있었다는 것이 부정되어 버리는 죽음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나이를 먹습니다. 시간이 우리를 어린아이 대하듯이 나이를 먹여줍니다. 사실은 시간이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을 먹으면서 우리의 몸은 나무나 꽃, 동물과 같은 살아있는 것들이 밟아가는 라이프 사이클을 따라갑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나는 더 정직해지고, 더 지혜로워지고, 더 책임감있고, 더 진실해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