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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가족, 그리고 성숙
주말이 추석이었습니다. 한국의 부모님과 짧게 영상통화를 하는 것으로 추석을 보냈습니다. 양가 가족들은 여느해처럼 함께 모여서 식사를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모양입니다. 개인적으로, 추석은 조금 쉽게 지내는 명절입니다. 10월에 있는 “추수감사절”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명절이면 가족을 찾는 것은 한국의 풍습만은 아닙니다. 중국에서도 명절이면 대이동이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캐나다에서도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많은이들이 가족을 찾아갑니다. 사실, 부모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부모가 자녀를 찾아가는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저희 부모님만 해도 “너희가 더 많은 숫자로 이동을 해야하니, 둘뿐인 우리가 너희들이 모이기 편한 곳으로 가마”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녀가 편한 곳에서 모여 보내는 명절과 불편하지만 부모님이 계신 곳에서 모이는 명절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경험해 보셨습니까? 

어떤 이들은 “고향”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내가 태어나 자라난 곳”이 아니라,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으로 정의하기도 합니다. 부모님이라는 존재는 우리 가슴 속에 다양한 감정의 형태로 세겨져 있습니다. 부모와 나의 관계가 어떠한지와 상관없이,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동안 자녀들이 경험하는 심리적 안정감이 있습니다.  “나 이제 고아됐다” 제 아버님이 할머니 장례를 마친 저녁에 하신 말씀입니다. 사실, 한국의 명절이 기억되고, 챙기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때문입니다. 그 가족의 핵심에는 부모님의 생존하심이 있습니다.  명절이면 특별히, “불효”라는 단어가 마음을 찌르는 이유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명절이면 가족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고, 내 주변의 관계를 돌아보게 됩니다. 내가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있는가? 단순히 깊은 신뢰의 관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제가 경험한 가족, 제 가족의 경우, 깊은 신뢰라는 것은 “믿어줌”에서 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   “끊을 수 없슴”에서 옵니다. 내 선택과 상관없이 내가 그 안에서 태어나버린 가족, 그래서 일평생을 부정할 수 없고, 함께 가야하는 관계에서 가족의 의미가 옵니다. 피가 물보다 진한 이유는 그 피가 내 내면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피는 흘러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민 생활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관계하고, 관계를 끊습니다. 너무 쉽게 타인에 대해 말하고, 타인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 대해 감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산을 오르거나, 여행을 할 때, 잠깐 길을 같이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갈래길이 나오면 다른 길로 걸어가버리는 이들의 관계처럼 관계를 맺습니다. 그래서 이민 생활에서 가족은 한국에서보다 더 중요한 울타리가 되며, 우리가 가족에 더 집착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내 가족의 울타리가 조금 더 넓어져서, 우리 가족을 형성할 수 있을까요?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말이 우리에게 감동으로 경험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성숙을 위해서 이 가족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숙이라는 것은 신체적인 자라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장하는것은 숫자적인  증가를 의미합니다. 키가 크는 것은 성장하는 것입니다. 성숙은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인지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숙하게 되는 것은 내 가족 안에서 내 위치를 인식하고, 그 역할을 감당해 내는 것입니다. 어려서 철이 들면, 내가 형인지 동생인지를 알게 되고, 가족 안에서 내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숙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되는 경험이 성숙의 비약을 가져오고, 아빠와 엄마가 되는 것이 성숙의 계가 되며,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또 다른 성숙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모든 서신서에서 언급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 속에서 믿음이 실천되는 것이며, 자녀와 부모 사이에서, 주인과 하인 사이에서, 그리고 교회의 다양한 역할 속에서 나타납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를 닮는 증거가 많아지지 않으면, 성숙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를 대하고, 부모를 대하는 모습 속에서 믿음과 섬김이 늘어나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인식하고, 주어진 일을 하는 기회를 선용하는 것이 성숙입니다.  공부 열심히 하는 청소년은 내일의 더 많은  돈이나 더 나은 지위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기회에 대한 최선의 결과인 것입니다. 

가족을 이룬다는 것은 불편한 것이 아니라, 성숙의 기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가족같은 교회가 아니라, 가족인 교회입니다. 이 가족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적절한 처신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성숙입니다. 명절이면, 한국의 가족 만큼이나 생각나서, 잠깐이라도 통화하는 교회의 가족이 있어야 합니다. 너 때문에 오타와의 삶이 외롭지는 않다고 말하는 가족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