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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서 부모에게 감사합시다
설교 때 종종 흉을 보는 아들놈이 20살이 되었습니다. 
이제 조금은 더 책임있고, 성숙하고, 자기 삶을 꾸려나가는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보모의 마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주에는 공원에서 열심히 살을 찌우고 있는 기러기들이 보기 좋아 한참을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무리들 중에 몇몇이 먹이를 먹지 않고, 욺직이지도 않고, 지나가는 차들과 삶들을 노려보듯 쳐다보는 녀석들이 있었습니다.  듬듬한 느낌에 마음이 따듯해 졌습니다. 마치,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로서 느끼는 느낌이 교감되어졌다고 하면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요?

똑같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내 아이가 연결되어 있는 것과 다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차원이 다릅니다. 
저는 감히 단정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우리 마음에 두가지의 우상이 있다면, 돈과 자녀입니다. 이 두가지의 영향력에서 벗어 날 수 있을까요? 저는 제 코에 호흡이 있는 한, 이 두가지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패밀리 맨이었습니다. 
“빚을 내서라도, 네가 원하는 일은 하게 해 준다.,” 제 아버님의  말씀입니다. 저와 누님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아신 아버님이 저희를 불러서 하신 말씀이, “종교로 가족이 둘로 나뉘는 것은 좋지 않다. 너희가 우리보다 살날이 더 많으니, 우리가 너희를 따라 교회를 다니려고 한다,” 였습니다.
밴쿠버에서 신학교를 다니고 있던 어느날 전화를 하셨습니다. “지방회(성결교회의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모이는 모임-장로교회에서는 노회라고 부릅니다)에 다녀왔다. 가서 보니, 거기 있는 목사들의 대부분이 아버지나 장인이  목사더구나. 목사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장로더라. 너도 목회를 할 생각이냐? 네가 목사가 된다면, 내가 최소한 너를 위해 장로는 되어야 겠는데...” 하셨습니다. 저는 제 마음 속에 이 아버지의 지지와 지원이 동일하게 있어, 제 아이들에게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원하는 삶을 살아봐라. 내가 지지해 주마.”

우리가 우리 자녀들을 향하여 가지고 있는 부모로서의 마음을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적용해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이신 예수가 어린 아이로 태어났을 때에, 천사들을 보내 축복하고, 기뻐하셨습니다. 세례를 받고 물 위에서 올라오실 때에, 예수님을 향해 사랑과 기쁨을 표현 하셨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항상 함께 있다”는 이야기를 하나님의 예수님에 대한 지지와 지원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아버지로서 하나님의 슬픔은 이 세상의 빛을 가려, 어두움으로 이 세상을 덮을 만큼 컸습니다. 

그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가지고 계시는 태도는 “그 사랑으로 인해, 스스로 기쁨을 감추지 못하신다” 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우리를 향해서 가지고 계시는 기대 또한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에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서기를...

저는 제 아들이 이 책임감이 커지고, 분명해 지기를 원합니다. 
일상은KO 펀치와 같은 한방이 아니라 수없이 던지는 잽이라는 것을 알기를 원합니다.  “행복과 사랑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도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제가 아버지로 항상 자기들 옆에 있으며, 관심과 지지의 마음으로 함께 있다는 것을 알기를 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작은 순간들은 일상의 연속이라는 것을... 

다음 주면 추수감사절입니다. 
다감사합시다. 다(多) 감사합시다. 우리의 하루 하루가 감사할 이유이며, 우리의 숨이 계속되고, 아침에 눈이 떠지는 것이 감사할 이유이며, 하루를 마치고 피곤한 몸과 마음을 누일 수 있는 것을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봄의 비와 가을의 비처럼, 일상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해의 뜨고 지는 것처럼 일상에 있습니다. 이 많은 사랑. 다(多)사랑을 경험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