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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 변화에 대해 2
(계속되는 글입니다) 
내가 경험하는 성령과 빌 브라이트의 성령과 동행함의 차이는 “성령”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령에 대한 태도” “하나님을 향한 태도”의 차이, 즉 헌신의 차이에 있었습니다.

결국, 내가 빌 브라이트처럼 내 삶의 전영역을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을 위해 포기할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에 당면하게 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질문에 나는 아직도 “예”라고 머뭇거리며 대답합니다. “예”라고 대답한다고,내 삶이나 하는 일이 극적으로 변화되지 않고, 나는 내 일상의삶을 살것을 알면서도, 그대답에 머뭇거립니다. 

그러는 중에, 내 삶의 변화는 더디게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것을 변명처럼,  점진적 변화이라고 스스로를 위안을 하며 말합니다. 그런데, 이 더디고 점진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일이 급진적 변화보다 더  어렵습니다. 조금 나아진듯 하다가, 금방 제자리로 돌아가 버립니다. 내 마음, 내 내면의 동기가 서서히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시선은 하나님과 내 자신에게 있지 않고, 타인을 향해 있습니다. 변화가 가능한 것이 내 자신이지 ,타인이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사실을 말씀으로 나를성찰하고, 진리에 나를 비춰보지 않습니다.  

목회자로서 나의 절대적 절망은 여기에 있습니다. 내 자신의 변화를 위한 씨름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헌신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결단을 못해,  그 영역을 너무나 더디고 천천히 넓여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슬픕니다. 목회자로서의 또다른 절망은 ‘자신의 변화’가 아닌 ‘타인의 변화’에 집중하는 눈과 말로 교회를 가득 채워야 한다는 목회의 현실입니다. 타인을향해서는 “너나 잘하지!”라고 쉽게말하지만,나를 향해서는 “너만 잘하면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2023년이 되는 내가 사역자의 길에 들어선지 30년이 됩니다. 내 자신, 그리스도인으로 나의 성숙과 변화에 대한 고민에 대한 나름의 답안지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점진적 변화주의자의 내 모습을 고민합니다. 여기 그답안지의 초안이 있습니다.   

“왜?”라는 질문이 내 내면을 향하지 않으면, 변화와 성숙은 없습니다. 변화와 성숙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탓하는 것이 믿음의 생활입니다. 왜 타인의 눈의 티끌이 내 눈에 그렇게 크게 보이는지를 주님에게 물어보고, 그 이유를 깨닫는 것이 내적치유의 시작입니다.

점진적 성숙의 열쇠는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100%의 삶이 드려지지 못하는 “내 삶예배”에 대해 고민하고, 눈물 흘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매일같이 가슴을 치며, 오늘도 하나님을 잊고 살고,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했던 것에 눈물 흐리고, 내일은 1%라도 조금 더 하나님을 인식하고, 동행하겠습니다라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식은 우리를 교만하게 하고, 경험은 우리로 하나님을 이용하게 한다고 경고합니다. 점진적 변화의 시작은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모하고, 실천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매일, 매일 나를 반성하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내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이 태도를 내 마음의 중심에 갖는 것에서 ’나의 변화와 성숙’이 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