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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을 사모합시다
간디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날 한 어머니가 간디에게 와서 하는 말이, “내 아들이 사탕을 너무 좋아합니다. 이가 다 상했습니다. 아들이 당신을 너무 좋아하니, 우리 아들에게 사탕을 그만 먹으라고 조언을 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간디가 그 어머니에게 2주 뒤에 다시 찾아 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2주가 지난 후에, 간디는 그 어머니와 함께 아들을 만났습니다.
“사실은 나도 사탕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사탕을 끊어야 했고, 2주정도의 시간이 필요해습니다.”

배움과 성숙이 교회에서 일어나지 않는 이유의 첫번째 책임은 가르치는 자, 인도하는 자입니다. 목사가 바로 이 첫번째 대상입니다. 가르치는 자에게 요구되는 책임의 무게가 가볍지 않습니다.

배움과 성숙의 멈춤에 대해서 바울은 두번째 이유를 설명합니다. 고린도교회에서 바울은 신앙의 기초만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하는 성도들(고전3:3)은 배움과 성숙이 멈춥니다.

이 가르침을 살아내지 못하는 선생과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살지 않는 성도들로 구성된 교회를 상상해 보실 수 있으십니까?
사실, 이런 교회를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최근에 발표된 한국의 한 여론조사는 교회를 신뢰하는 비율이 36%정도이며, 교회를 불신하는 비율이 60%를 넘어 서 있다고 말합니다. 슬픈 일입니다. 사실, 어쩌면 우리 교회도 이 카테고리에 속해 있을 수 있습니다.

잘 가르치지 못하는 목사가 아니라, 가르치는 것을 살아내지 못하는 목사인가? 질문하고, 회개합니다. 가르치는 것을 살아내지 못하는 이유 또한, 바울의 지적처럼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하는 ”것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한다는것은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우리는 이 세상의 말을 따르게 됩니다.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회개”에서 시작합니다. 변화의 필요성 앞에서,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미성숙함을 고백하고, 말씀 앞에 내 자신을 정직하게 내어 놓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변화’가 아닌, ‘나의 변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 묵상 훈련’을 준비하면서, 기도하게 되는 것이있습니다. 내 안에 말씀 묵상과 주님과의 동행함이 좀 더 일상화되고, 매일 매일 더 깊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배우고 훈련을 받는 이들의 마음 속에 말씀에 대한 목마름과 주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한 개인적인 헌신이 있는 것입니다.

성숙과 변화를 타인을 향햐여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향해 실천하는 것이 건강한 교회의 표지들 중에 하나입니다. 올해에는 말씀에 대한 간절함이 성숙으로 연결되어지길 기도합니다. 3월에 시작할 ‘말씀 묵상 훈련’을 사모하고, 기도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한번은 받아야 하는 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