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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 #1] 나는 팃끌입니다.

[사순절 묵상 #1]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

Remember that you are but dust and into dust you shall return.

부모가 자식을 가엾게 여기듯이, 주님께서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가엾게 여기신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창조되었음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며, 우리가 한갓 티끌임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시편 10413-14)

 

오늘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나의 연약함과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사랑과 순종으로 서 있지 못하는 모습을 위함임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기간입니다. 사순절의 시작은 "(Ash)"의 수요일이라 부르며, 이마에 검은 숫덩이나 재로 십자가를 그리는 의식으로 시작합니다. 오늘 캐네디언들 중에 이마에 십자가를 그린 이들을 보면, 이 의식에 참여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죄의 핵심은 우리의 본질에 대한 망각이 하나님을 향하여 거절과 교만한 모습으로 서 있는 자아입니다. “한갓 티끌에 불가한 나를 인식하는 것이 죄로부터 벗어나는 첫 고리가 됩니다.


내 모습을 살펴 보십시오. 내 마음에 있는 수많은 계획과 내 체면과 얼굴을 세우기 위한 처세와 내 손에 잡힌 것이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많고 적음에 웃고 우는 모습을 내려다 보면, 하늘에서 우리 인생의 군상을 비웃으시면서 내려다 보시는 하나님을 인식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일이 안되었을 때, 자조섞인 웃음과 함께 운칠기삼이라는 말을 하곤합니다. 운이 70% 실력이 30%라는 말입니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의 시작을 살펴보면, 여기서 운은 행운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나와 상관없이 돌아가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이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최선을 다하지만,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한계가 훨씬 더 크고 무겁다는 뜻입니다.


베토벤은 그의 생애 마지막 작품은 현악 4중주마지막 4장의 악보에 그래야만 하는가?”를 외치다가, 시중하게 내린 결론, “그래야 한다는 마지막 메모를 남기고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찾아온 비극적인 인생을 운명과 같은 도도함과 용기로 맞서보지만, 주어지는 인생의 무게와 죽음 앞에서 그것들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수용의 순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인 내가 티끌임을 기억한다는 것이 자조나 자책, 무기력감의 표현이 아닙니다. “한갓 티끌임을 안다는 것은 나의 근원이 어디에 있으며, 70%라고 말하는 불가항력의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혜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마음의 시작은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는 마음의 고백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가엾게 여기듯이, 나를 가엽게 여겨 주소서.” 이 기도를 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타인을 향한 지나친 기대나 판단, 나를 향한 교만이나 열등감은 없습니다. “내 이름은 아담, 흙에서 난 존재. 그래서 흙으로 돌아갈 존재. 하나님의 은혜, 이 순환의 고리를 끊는 힘.”

내 마음의 머리에 검은 숫덩이로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