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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묵상 # 24] 죽은 자입니다.

[사순절묵상 # 24]

요한계시록 19-20

 

갑지기 왠 요한계시록일까 싶은 분들이 있으실텐데요. 최소한 계시록의 앞부분(1-4)은 읽고 이해하는데 신학적 이견이나 어려움이 없습니다. 특히 요한은 자신의 계시록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는 복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삶의 정황이 녹녹하지 않고, 믿음에 대한 질문과 성찰이 요구되어지는 상황에 묵상하면 좋은 본문입니다.


특별히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예수님은 우리가 친근한 분이 아닙니다. 이 분은 우리가 보지 못한, 듣지 못한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되심과 고난에 대해서는 익숙하지만, 예수님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의 지금의 모습은 우리가 장차 나타날 모습이라는 점을 기억하시고, 오늘 본문에 묘사되는 예수님의 모습을 잘 살펴보십시오.


이사야를 포함해서, 베드로나 바울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들은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라고 하는 “nothing"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은 이 죽은 자가 되는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감히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누구를 정죄합니다. 죽은자처럼 되어 엎드러져 있는 나를 격려하고, 세워주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를 경험한 이는 자신은 죽고, 자신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고백을 삶으로 해 냅니다.


교회에는 어린 아이들이 가득차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 많이하는 어린아이, 성경을 많이 아는 어린아이, 다른 친구들과 놀기를 좋아하는 어린아이, 어려운 친구를 돕기를 좋아하는 어린아이... 이 어린아이의 특징은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자기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나르시스즘에 빠져있는 아이들은 자신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어제와 내일을 인식하지 못하는 오늘의 삶은 하루살이의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한은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한 자였습니다. 예수의 증인의 삶을 사는 일에 진실했고, 환란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과 그의 영광을 보았을 때,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자각에 몸을 땅에 엎드립니다. 무능력의 표현이면서, 흙에서 나온 존재라는 표현입니다.


절대절망이나 절대포기라고 하는 순간이 신앙에 필요하다고 합니다. “필요하다고 합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 경험이 필요한 사람이 바로 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 황제를 압도하고, 세상의 왕이요, 대제사장이며, 절대 심판자로 드러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 영광의 모습 앞에 섰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스스로 영광 중에 있어, 해가 힘있게 비치는 같은 그의 얼굴을 쳐다 볼 수도 없습니다. 내 속을 살피는 듯한 그 눈빛 앞에서 과연 얼굴을 들고, 눈을 맞출 수 있을까요? 희다고 표현되는 순결과 순수의 극치 앞에서 내 자신은 얼마나 검고 오염된 것으로 느껴질까요? 나는 아무 말 없이 요한처럼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될 뿐입니다.


오늘 하루 침묵하며, 죽은 자처럼 내 자신을 주님의 발 앞에 엎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