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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 # 33] 주님의 시간과 타이밍을 찾아

[사순절 묵상 # 33] 마가복음 141-11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이 세상의 만물에는 때가 있습니다. 이 때를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을 버는 방법을 알더라도 그 때를 아는 사람들이 돈을 법니다. 그들은 시계의 시간을 읽지 않습니다. 그들이 보고 읽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도 사실, 이 때를 잘 알아차립니다. 적당한 때를 안다는 것은 사실 그 때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해야할 때, 이사할 때, 승진을 위해 노력할 때, 시험을 준비할 때.... 지금은 어떤 때입니까?

 

어떤 결심이나 계획이 잘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꼭 의지의 문제에 있지는 않습니다. 절실함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변화나 도전의 때라는 깨달음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신이 번쩍 드는 깨달음은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느냐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 그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백성들의 반응을 보고 있습니다. 사실은 자신들의 안위와 권력의 보존의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 또한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실행할 적합한 기회를 찾는 것입니다. 본문의 어떤 사람들은 일꾼의 일년치 품삯에 해당되는 돈이 적적하게 쓰여져야 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원하면 아무 때나라고 때에 대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예수님 또한 때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다는 말씀처럼, 자신이 죽을 때를 기다리십니다.

 

두 사람만이 이 때를 찾았습니다. 시몬은 자신의 병을 고친 예수님에게 감사를 표현할 때를 찾았습니다. 예수님을 초대해 식사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름모를 무명의 여인입니다. 어쩌면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자신에게로 여인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가문의 표식과 같은 향유였을 것입니다. 그 가문의 여인들이 자신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때-결혼이나 출산,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사용해 온 향유입니다. 이 향유를 담은 그릇을 깨뜨려서 그 안의 모든 향유를 다 예수의 머리에 부어버립니다.

 

그는 힘을 다하여라는 예수님의 말처럼, 옥합을 깨뜨리는 이 여인의 몸짓은 어쩌면 절규였을 것 같습니다. 낮에 술취했다는 비방을 받은 한나의 간절한 몸부림치는 기도 같았을 것입니다. 이 간절한 몸짓은 그녀가 때를 알았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행한 일은 하나님의 발자욱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그분의 발꿈치를, 그분의 뒷모습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마치 모세가, 엘리야가 하나님이 자신을 지나간 뒤의 흔적을 본 것처럼 말입니다.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지금은 나에게 어떤 때입니까? 내 전부를 쏟아서라도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요즘 나는 생각이 많습니다. 두려움이나 공포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시는 길을 보고 싶어서입니다. 그분의 뒷모습이라도 발견할 수 있으면 싶습니다. 이 상황이 끝나면 되돌아가게 될 일상은 이전과 같지 않아야 될 것만 같습니다. 마치 아프리카에서, 중국에서, 나와는 상관이 없는 해프닝이 내 현실이 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져야 하는 때에 대한 마지막 경고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시몬과 이 무명의 여인처럼, 주님으로 인한 인생의 때를 붙잡고 싶습니다. 나에게 이미 이루어진 일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고, 주님이 향하는 길을 알아서, 그 시작에서 과정, 그리고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긴장한다는 것은 주의깊게 무엇인가를 살핀다는 것입니다. 때를 알고, 그 때를 잡는 것은 방법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입니다. 결단의 문제입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주어진 일상 중에, 그 시간을 내가 결정하여 사용할 수 있는 요즘에, 나는 하나님의 때, 그분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영적인 돋보기를 손에 들고, 두리번거리는 시간이 얼마나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