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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 #34] 하나님의 식구

[사순절 묵상 #34] 마가복음 1412-21

 

유월절의 만찬은 지금도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식사입니다. 시골에 있을 때, 유대인들이 있어서, 이 만찬에 초대받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유월절 만찬 안내서(예식서)가 있어서, 그 예식서를 따라 식사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성찬식의 기본적인 유래 또한 이 유월절 만찬입니다. 초대교회는 성찬식을 지금 우리처럼 간략화된 의식이 아니라, 식사였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마치고 함께 먹는 친교음식이 성찬식이었습니다.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의 의미는 서양보다 한국문화가 훨씬 더 정겹습니다. 서양은 companion=com(함께)+panini()라고 표현하여, 여행중에 함께 음식을 먹는 동반자, 친구의 의미를 지닙니다. 한국은 함께 음식을 먹는 사람을 식구라고 합니다. 가족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는 요즘, 식구라는 단어가 옛날 느낌이 나지만, 가족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즉 가족이라는 단어의 기원은 일본어입니다. 식구라는 단어가 한자이지만, 우리는 대대로 이 식구라는 단어를 사용해 왔습니다.

 

비열한 거리라는 영화에서 조인성의 대화입니다. "아야, 형이 하나 묻자. 식구가 머여? 식구가 먼 뜻이여? 식구란 건 말이여. 같이 밥 먹는 입구녁이여. 입구녁 하나 둘 서이 너이 다써 여써 나까지 일곱. 이것이 다 한 입구녁이여. 알겄냐? 그면 저 혼자 따로 밥 먹겠다는 놈은 머여. 그건 식구가 아니고 호로새끼여. 그냐 안 그냐?"

 

미치 예수님이 가룟유다에게 하는 이야기 같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식구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마음의 문을 열어, 예수님을 내 삶으로 환영하고 맞아들일 때, “너랑 나랑은 이제 식구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이라는 예수님의 말에 담겨있을 감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분의 눈빛과 얼굴 표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일반적으로 마지막 유월절 식사를 했던 큰 다락방은 마가의 집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다락방이 예수님이 죽으신 후 제자들이 모여 두려움에 떨던 곳이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 먹을 것을 청하신 곳입니다. 마지막 식사와 첫 식사의 장소입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하나님은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영을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먹이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식구입니다. 나 개개인의 영화나 고난이 아닙니다. 식구 중에 누군가가 어려움을 당하면, 온 식구가 그 아픔과 고통을 나눕니다. 식구 중에 하나가 영광을 받으면 온 식구가 얼굴을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식구입니다. “하나님에 방점을 두어서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의 체면과 수치가 식구들 하나 하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어디있냐고 더 이상 묻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식구들을 언급합니다. “너를 보니, 니 부모를 알겠구나!” 이것이 요즘 세상이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훈육하는 이유는 그 자녀 개개인을 위함만이 아닙니다. “너 잘되라고!”라는 말은 100% 진실이 아닙니다. 식구는 개별화되지 않습니다. 조인성의 말에 한 입구녁이여라는 말처럼 하나로 인식됩니다. “니가 잘되면, 나도 잘되기 때문이지가 맞는 말입니다. 자녀의 성공을 가장 혜택받는 이는 노년의 부모입니다. 자녀의 성공이 물질로 평가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식구입니다. 함께 영화를 나눕니다. 함께 수치와 어려움을 나눕니다. 주님은 이 식구에서 혼자 밥을 먹는 가룟유다를 그 존재의 근본에서부터 안타까워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식구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훈련하십니다. 우리는 이 훈련의 기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당신을 위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신다는 표현은 조금 위험합니다. 그분은 나를 도구처럼 사용하고, 필요없으면 저 한구석에 놔두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식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내 존재의 근원에서부터 너는 내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입니다. 이 식구의 가장이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