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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 # 37] 빌라도의 선택과는 다른 선택

[사순절 묵상 # 37] 마가복음 15:1-15

 

대제사장의 집에서 산헤드린 공의회원들에 의해 심문을 당하실 때, 자신을 그리스도로 천명하신 예수님은 불경죄의 항목으로, 빌라도에게 넘겨집니다. 빌라도는 보통은 갈릴리에 있는 가이샤라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유월절 기간 동안에 예루살렘의 치안 유지와 민중봉기를 억제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종료주일에 감람산 언덕을 넘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을 때, 빌라도는 서쪽에서 대로를 통해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이냐?”라는 빌라도의 질문에 네 말이 옳도다라고 대답하시는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빌라도와의 대화는 우리를 성탄절의 이야기로 되돌아가게 합니다.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물어본 질문이 유대인의 왕이 어디에서 태어나셨습니까?”입니다. 30년 전의 질문이 열매로 나타나는 극적인 장면입니다. <벤허>라는 영화는 이 이야기를 30년 뒤에 예루살렘을 재방문하는 아랍상인의 모습으로 등장시킵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전차경주에 벤허가 사용하는 말과 전차가 바로 이 동방박사가 제공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는 아이러니하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앞에 서 있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선택입니다.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 중에 살인하고(아마 로마인이나 친로마 유대인이었을 것입니다) 체포된 바라바는 시대가 꿈꾸는 일을 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왕됨은 시대의 눈에 불경하고, 무의미한 선언이었습니다. 특별히, 종교는 내세를 이야기하는 것같지만, 사실은 현실 속에서 얼마나 유용한지에 의해 신자들을 열광시킵니다. 오늘 본문의 무리는 예수님에 대한 오해를 넘어서, 자신들에게 누가 더 유용한지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나의 신앙도 내 삶의 유용함에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빌라도의 선택 또한 유용함에 의한 결정입니다. 자신이 예루살렘에 와 있는 목적이 치안유지와 민락 억제였습니다. 이 목적을 위해 바라바를 선택합니다. 빌라도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고백을 예수님 자신의 주장이 아니라, 유대 사람들의 고백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태도와 대답에 깊은 인상을 받지만, 결국은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합니다. 믿음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를 위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나를 위해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고백을 요구받습니다. 어쩌면, 나는 빌라도입니다. 예수와 바라바 중 한명을 선택해야 하는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