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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묵상집에서
12월입니다. 
어떻게 2022년이 지나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단순히 시간이 화살처럼 날아, 지나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2년의 코비드-19의 거리두기와 격리의 기간이 지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사용된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길고, 너무 많이 소비되었습니다. 일상이 코로나로부터 분리되고, 회복되기 보다는, 코로나, 그 한 가운데에 일상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엔데믹"이라고 부르는 지금 상황은 "펜데믹"의 상황과는 다른 형태의 불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불안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예측 능력을 벗어나 존재하는 듯한 우리 삶의 정황, 환경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유모른 위협, 더 이상 이땅에서 안전하게 삶을 살아낼 수 없다는 인식이 사람들의 마음 밑바닥에서 불안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한 신학자는 인간의 불안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존재론적 불안." "도덕적 불안," "정신적 불안"입니다. 존재론적 불안은 우리가 자신의 종말, 즉 죽음이라는 명제 앞에서 느끼게 되는 불안 같은 것입니다. 도덕적 불안은 공동체의 윤리나 법을 어긴 자가 갖게 되는 죄의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정신적 불안은 삶의 의미나 가치를 찾기 못한 사람들이 갖게 되는 불안입니다. 운명과 죽음, 죄의식과 심판, 공허와 무의미가 사람을 궁극적으로 불안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 이 땅에 살아 존재하는 한, 이 세 종류의 불안은 우리 안에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잘 생각해 보면, 복음은 이 세 가지 불안을 극복하는 것에 대한 힌트를 제공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같은 인간이 되셨다는 존재론적 선언은 하나님께서 인간이라고하는 존재를 덧없거나, 무의미하다고 판단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기꺼이 되길 원하셨던 존재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긍정해 주는 존재라는 입니다. 죽음이라는 바다와 운명이라는 파도를 가로질러 항해하는 항해자의 삶을 내 모습 그대로 살아낼 수 있는 용기를 복음에서 발견합니다.

어릴 때부터, 혹은 우리의 집단적 무의식 속에서 경험하는 도덕적 불안은 진지하게 기독교 신앙을 배우고, 고민하면서 더 깊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죄에 대해 더 민감해지고, 죄책감을 더 많이 경험합니다. 하지만, 이 민감함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 더 밀착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보혈 아래 나를 세웁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데모처럼 이 세상을 향하여 선포되고, 외쳐진 큰 함성 속에 나를 세우면, 나는 이 도덕적 불안을 감싸고 계시는 하나님을 느낍니다. 아픈 아이를 안고, 밤을 세운 엄마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도적적 불안을 감싸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정신적 불안입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하고, 기술사회가 될 수록 인간의 삶은 날카롭고 뽀쪽하게 변합니다. 옆에 있는 이를 가차없이 벨 수 있는 칼날을 품고, 그 칼날에 내 가족과 사랑하는 이가. 내 자신이 상처를 입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삶의 방향, 즉 추구하는 가치와 의미가 없는 이들의 칼일수록 훨씬 날카롭고 파괴적입니다. 복음 안에서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를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섭니다. 내가 어떤 존재이며,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내 가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자기 자신을 지불하고, 나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내 가치는 내 성취나 업적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이 존재 가치의 변화를 인식할 때, 내 삶은 항해의 방향을 결정하게 됩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키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꾸준하게, 오랫동안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기업 총수의 자녀들과 같은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삽니다. 기업을 물려 받아야 하는 사실이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는 내 사람들을 이해하고,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 저 말단에서부터 회사 생활을 시작한 것입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총수의 아들, 딸이라고 상상하지 못하지만, 괜찮습니다. 나에게 힘이 되는 것은 나를 기대하시는,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한 주간 경험했던 이런, 저런 이야기를 그 분 앞에 풀어 놓고, 두런 두런 이야기하는 시간이 나를 새롭게 합니다. 그리고 용기를 얻고 또 한 주를 시작합니다. 

2022년을 보내면서, 새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용기를 가지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라고 교우들을 권면합니다. 이 용기는 복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용기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살아가셨던 용기입니다. 우리에게도 그 용기가 있습니다. 손에 그 용기를 쥐시길...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