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서도 정말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기도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기도를 싫어한다. 기도는 해야만 하는 의무이고 하고 싶은 것이지만, 실재로 기도하는 것 사이에는 거리가 많습니다. ㅇㅣ런면에서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의 고통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고 기도하지 못하게 할까?
많은 이유들 중에 하나는 기도하는 법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도하게 되면 기도라는 것은 정복이나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무지를 고백하고 주도권을 내려놓은 행위라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기도하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는 기도하기 전에 내 동기가 바르게 되어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기도는 자기중심적이고 어리석은 기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이해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것입니다 즉 기도의 동기나 기도의 내용의 올바름이나 그름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들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여기서, 이 모습 그대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민수기 11장에 나오는 모세의 불평이나 왕하 2:24에서 나타나는 자신을 대머리라고 놀리던 아이들을 향한 엘리야의 저주와 출32장의 자기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걸고 기도하는 모세나 왕하 4장의 수넴여인의 아들을 살리는 엘리야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요. 단순한 기도에는 좋은 것, 니쁜 것, 아름다운 것이나 흉한 것이 모두 섞여 있다. 단순히 기도는 우리의 일상의 모습을 하나님과 대화거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 단순한 기도는 어린아이들의 기도처럼 보이며, 가장 초보적인 기도라고 할 수 있지만,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의 내용을 주님이 가르치셨던 기도에 포함시키셨습니다. 모든 일에, 모든 것을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기도의 시작입니다. 이 단순한 기도를 뛰어넘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장소와 시간이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시점이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거룩의 순간입니다. 일상의 경험과 내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것이 단순한 기도의 모든 것입니다. 때로는 좌절과 슬품 분노가 담길 수 있고, 길을 잃은 듯한 상실과 상심이 담기기도 하고, 하나님께 불평이나 질문, 외침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우리 안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그것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C. S. Lewis)기도가 단순한 기도이며, 기도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기도하기 위해서,
기도는 삼위일체 하나님가의 사랑의 관계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지금까지 하지 않았다는 부담이나 죄책감, 낙심하지 말고 그 마음조차도 하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의 양에서 자유로우십시요.
기도에 있어서 우리 자신이 중심이 되며, 주제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기도를 하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질 때, 무게 중심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우리 생활의 일부로 생각하다가 우리가 그의 생활의 일부임을 깨닫게 도와줍니다.
지금은 단순히 기도하십시요.
이것이 시작이며, 기도의 모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