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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묵상 #36] 근본적인 질문의 상황에서

[사순절묵상 #36]

마가복음 1443-52

평상시에는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실존적 질문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왜 내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실존적 질문입니다. 내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혹은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왜 존재하는가?

둘째는, “뭔가 잘못되어 있다, ?”라는 질문입니다. 분명 이 세상이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위의 두가지 질문은 가치를 향한 인간의 보편적 욕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의미와 존재가치-과 유용성-뭔가를 하고 살아야-에 대한 추구입니다. 사람들은 이 두 욕구를 충족시켜줄만한 토대를 찾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대답을 합리화합니다.

 

좋은 부모라는 토대위에 위에서 말한 정체성과 유용성을 세웠다고 해 보십시오. 내 인생은 아들이나 딸, 아이들의 인생에 의해 평가받게 됩니다. 아이들을 바라보면 이유모를 초조함이나 두려움이 싸늘한 기운의 바람처럼 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 정체성과 가치의 토대가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자기 자신의 성공이나 어떤 것에 토대를 두는 사람은 자책과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여기는 자기를 미워하고 경멸하는 인생을 경험하게 됩니다.

 

관계의 어려움을 경험하거나, 마음에 평안을 잃어버리게 될 때,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어디에 내 인생의 토대를 두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목사로서 나는 교우들의 반응과 모습을 바라보곤 합니다. 그들의 반응 하나하나에 내 감정이 움직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는 순간, 이 감정의 파도가 나를 삼켜 버립니다. 부모로서 나는 내 자녀들을 바라봅니다. 그들의 하루 일과나 어떤 태도, 성적표와 같은 성취감에 따라, 내 감정이 움직입니다. 다른 이들과 교회를 이룰 때, 그들의 직장이나 삶의 형편이 눈에 들어옵니다. 자연스러운 비교가 내 마음에 파도를 만들어, 나를 삼키는 경우를 경험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날 밤에 일어난 일은 결국은 혼자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루어지는 길을 갈 때, 무한하고 절대적인 고독의 밤에 결국은 혼자입니다. 어제까지, 나를 파는 이 순간까지 예의를 잃지않는 가룟유다의 가증함 앞에서,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오버액션을 하는 베드로의 모습에서, 나의 정체성을 오해하고, 강도나 도둑을 잡는것처럼 몰려온 무리들 앞에서, 나를 다 버리고 도망가는 내가 사랑을 주었던 이들 앞에서, 나는 혼자입니다.

 

예수님이 슬프고 놀라서 죽게된 감정은 단순히 죽음의 공포만은 아닐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내 인생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 보면, 그때 누가 내 곁에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왜 자식에게 집착하는지의 이유도 사실은 여기에 있습니다. “다 니가 잘되기를 바래서 이래라는 말은 그래야, 내가 좀 얼굴을 들고 다니고, 내 인생이 그래도 뭔가 한 것 같고, 내 옆에 있어서 뭔가를 해 줄것이 아니냐!“라는 말이 차마 이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이 상황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멈추게 하는 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현재 우리의 상황은 빨간색 신호등불이나 빨간 색의 STOP사인과 같습니다. 4월을 지나면 단순히 멈춤이 아니라, 이 멈춤이 우리 생활에 영향을 가져올 것입니다. 재정적으로 어려워지고, 심리적으로도 부정적 반응이 올 것입니다. 생애의 마지막 날 밤에 홀로 남겨진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그 어둠과 외로움과 배신감을 극복해 내었을까요?

 

나는 십자가에서의 고통스러운 외침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겟세마네에서의 기도가 힌트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무언가를 위해 삽니다. 그 무언가가 우리 삶의 실재적 주인으로서 권위를 행사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 주님이라 부르면서도 아직 그 무엇에 대한 대답의 경지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나는 내 모습을 제자들 중에 하나로 인식합니다. 그런데, 묵묵히 걸어가는 예수의 모습 속에서 나를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온전히 채우며, 내가 자랑할 가치이며, 위해 살아야 할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나를 온전히 사랑하신 분이며, 나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포기하신 분이며, 끝까지 나를 사랑하신다고 고백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유일하게 내 모든 것을 수용하고, 인정하시는 분, 마지막 숨까지 나를 위해 내쉰 유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