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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을 통한 단상
저는 동물을 좋아합니다. 
저희 집에 작은 시츄 2마리가 있습니다. 꼬리치며 달려오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좋습니다. 이뻐서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간식이나 먹을 것을 주기도 합니다. 제가 거실에서 쉬고 있으면, 제 옆에 딱 달라붙어 앉아 있습니다. 

제가 개를 아이들이라 부르는 점을 용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혼비백산 하여, 소파 밑으로 숨거나 저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는 청소기를 돌릴 때입니다. 청소기에서 나는 소음이 싫은 것인지, 청소기에 달린 대를 이리저리 흔드는 모습이 위협적인지 모르지만,   손에 청소기를 드는 순간 어디론가 숨어 버립니다. 다른 경우는 제가 사랑와 애정을 표현하는 경우에 일어납니다. “깨물어주고 싶다” 는 표현처럼, 애정이 지나쳐서, 표현이 과격해지는 경우입니다. 제가 스다듬는 것이 애정 표현을 넘어서  이 아이들에게 고통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손에 너무 힘이 들어간다든지, 너무 꼭 껴안는다든지, 아이들이 싫어하는 포즈로 있게 한다든지... 

사랑이나 애정이라는것이 파괴적이 될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상황이나 형편, 정도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랑이나 애정은 사실은 이기적이며, 파괴적입니다. 나를 위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애착입니다. 나 좋자고 표현하는 마음은 사랑이나 배려가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이 동물을 좋아하고 교감하는 기회를 주려고 노력합니다.

시골에 살 때, 저희 집 뒷마당에는 작은 무덤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아이들이 어릴 때, 기니피그나 햄스터, 토끼와 같은 수명이 짧은 동물을 기워보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 생명의 주기( life span)를 관심과 사랑으로  돌보고 관찰하는 경험은 스스로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인식하고, 배려하는 것을 가르쳐 준다고 믿습니다.

몇년 전에 저희가 키우는 개가 출산을 했습니다. 어미가 자신의 자식을 애지중지하며 돌보는 모습을 아이들이 보았습니다. 젖을 떼고, 강아지들을 다른 집으로 입양해줘야할 때, 저희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그 입양에 반대했습니다. 이유는 어미개의 수고와 사랑을 아는데, 그들을 떼어 놓은다는 것이 너무 잔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인으로서 우리는 압니다. 강아지들이 자라나, 어미개로부터 독립이 되면,  그들 사이에 소위 족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동물들의 본성과 힘에 의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하지만 어린 아이의 눈에는 사랑하는 자식을 그 어미로부터 떼어 놓은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인 것입니다. 상황과 여러설명 끝에, 한 마리만 집에 남겨 놓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에 개가 2마리가 있습니다. 엄마와 딸입니다.

그런데, 이 둘 사이에 위계질서가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저의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과 비슷한 엄마와 딸의 관계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딸이 더 젊고 활기가 있고, 힘이 있어 어미개가 눌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어느때 보면, 어미개가 양보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쩌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읽찍 헤어지거나 잃어버린 남매나 가족이 타인으로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개들의 관계에 대한 여러 부정적인 이야기들은 어려서 헤어진 개가족들에 대한 인간들의 시각에서 비롯된것은 아닐까 우겨보기도 합니다.  

동물들도 자기 가족을 알아봅니다.
동물들 사이에도 서로를 향한 관심과 애정, 돌봄과 수고가 있습니다.
마이그레이션을 준비하며 분주하게 먹이를 먹는 기러기 때들을 살펴보면, 몇마리는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피며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본능이라는 것에 의한 생존의 방법이 항상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생명들은 혼자 살 수없다는 인식을 다하고 있습니다.  맹수도 자신의 배고픔을 면할 만큼 먹이를 찾습니다. 

저는 짐승 혹은 개만도 못하다는 것이 사람들을 향한 최대의 욕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욕설의 핵심은 자기밖에 모른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습에서 아버지가 안보이거나, 나 혼자 뿐이라는 생각은 너무나 슬픈 생각입니다.  안그래도 힘든 타국에서의 생활이 슬프게 만듭니다. 마음 깊이 뿌리내린 죄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