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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묵상 # 32]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37)”


[사순절묵상 # 32] 마가복음 13:14-37

 

마가복음을 매일성경이라는 큐티 교재의 스케쥴을 따라 묵상하고 있습니다.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위기감이나 공포심을 조장하려 함이 아닙니다. 오늘의 삶에 최선을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환란에 대한 이야기 속에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뉘앙스는 본문 속에서 발견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날짜 수를 감하셨다는 표현이 마치 욥의 고난에 욥의 생명은 건들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생각납니다.

 

욥은 고난을 받기 전에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칭찬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욥의 믿음이 검증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친히 검증해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인한 환난을 경험하는 것이 축복인 이유입니다. 그것을 감당할 만한 이들에게 그 환난이 허락되어지고, 그 환란 중에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지금 시기는 이런 믿음의 환란이 아닙니다. 오히려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서는 안될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로마병사들이 들어가서는 안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성전을 파괴하고 약탈하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상황을 심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야기하시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힘으로 만든 영광은 언젠가는 없어져 버리는 허망한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싶어 하시는 듯합니다.

 

꽃을 키우다 보면, 예쁜 꽃을 피우는 시점이 있습니다. 이 시점이 지나면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꽃은 시들게 됩니다. 채소를 키우다 보면, 수확의 시점이 옵니다. 이 시점에는 나눠먹지 않으면 버리게 될만큼 풍성함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이 시점이 지나면 시들어 버립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 이라고 이름합니다. 발화점, 연소점, 포화점...

포화점이란 생물들이 서식지에 존재할 수 있는 최대의 개체 수를 의미합니다. 식물이 이 포화점에 달하면 어떤 수를 써도 더 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인간들의 기술과 문명이 이 포화점에 도달한 것은 아닐까요? 인간의 욕심과 권력의 상징인 도시화된 삶의 형태가 이 포화점에 도달한 것은 아닐까요? 개인적으로 흩어짐에 대한 이야기와 자급자족에 대한 이야기가 포스트-코로나의 화두가 될 것만 같습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시대를 읽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변화하는 시간과 상황과 같은 수많은 구슬을 꽤는 변하지 않는 줄-말씀을 가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지금 상황 이전에 우리는 에볼라나 사스, 메르스와 같은 많은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은 이 과거의 겸험들로부터 배운 결과 지금 어떤 나라보다 잘 대응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 개인의 삶은 어떻습니까?

 

저는 심판” “종말이런 단어로 지금 상황을 설명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주의하라, 깨어있으라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시대를 읽고, 주님이 기대하시는 내 삶의 양태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잠들면 안됩니다.“ 잠들면 꾸게 되는 꿈은 악몽일 것입니다. 두려움과 공포, 이기심과 배타적 분노가 만들어 내는 꿈을 꿀 것입니다.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