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 말씀과 묵상 >
  • 함께 읽는 글
따로 떼어 놓은 짧은 시간
1801년,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는 영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영국의 국회의원으로서 대영제국의 노예 폐지를 주도했던 그에게 닥친 영적 위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바로 정치적 야망이라는 소용돌이였다. 만약 그가 이 위기 앞에서 무너졌다면 19세기 영국의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그 위기는 총선에서 헨리 에딩틴(Henry Addington)이 차기 수상으로 당선되면서 시작되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에딩턴이 윌버포스를 장관으로 기용할 것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전기 작가 가트 린(Garth Lean)에 따르면 윌버포스는 한동안 각료가 된다는 기대에 부풀어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훗날 윌버포스는 그 시절의 자신에 대해 "야망의 충동질에 취해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리더의 자리에서 여러 특권을 누려본 사람들은 이러한 '충동'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안다. 야망은 그저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이 '충동 목록'에는 권력의 오남용과 함께 분노, 승부욕, 거짓말, 부도덕한 유혹도 포함된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망상에 한번 사로 집히거나 태도가 달라지면 마음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자발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윌버포스에게 야망은 꽤 큰 유혹이었다. 더 크고 더 강한 것에 마음을 빼앗겨본 사람은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 것이다. 야망에 사로잡히면 자아가 원하는 대로 사람들을 지배하고 편법을 쓰고 싶은 충동이 든다.
어느 일요일, 윌버포스는 마침내 이 야망의 문제를 정직하게 직면하기로 했다. 예배와 독거로 보낸 하루가 지난 후 윌버포스는 펜을 들었다. "안식과 예배의 날, 하나님은 찬양한다. 오늘, 세상의 것들은 그 실제 모습을 드러낸다. 야망은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그는 비로소 위기를 극복했다. 이 짧은 문장에서 윌리엄 윌버포스의 비밀 하나가 드러난다. 그는 일주일에 적어도 하루는 분주한 정계 활동에서 물러나 하나님을 예배하고, 가까운 친구들을 만나면서 조용히 반성하며 지냈다.
나는 윌버포스가 '반성하는 시간'을 보냈다는 점에 특히 주목한다. 반성이란 마음의 대화이다. 자기 자신과 또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마음의 대화를 할 때, 다른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고 돌봐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마음의 대화만큼은 오롯이 혼자 해야 한다.

영적 위기에서 빠져나오려면
이러한 원리는 비행기 이륙 전에 승무원이 진행하는 안전 교육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비상시 객실 천장에서 산소마스크가 내려오면, 우리는 남들을 돕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부터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권고를 듣는다. 아이와 함께 앉은 엄마에게는 얼토당토않게 들리겠지만, 논리적으로 따지면 그게 이치에 맞는다.
작가 안소니 블룸(Anthony Bloom)은 자기 아버지가 이런 마음의 대화를 잘 나눴다고 말한다. 그의 아버지는 영혼의 일에 몰두해야 한다고 느끼면 현관에 이런 글귀를 써 붙이곤 했다. "문을 두드리지 마세요. 집에 사람은 있지만 열어주진 않을 겁니다." 웬만하면 남들의 기분을 맞춰주려는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다. 현관에서 인기척이 들리면 버선발로 달려 나갈 테니까.
시편의 시인은 마음 깊숙한 곳을 향해 질문한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그렇게도 낙심하며(시편 43:5)" 또는 하나님께 관심을 청한다. "하나님, 나를 낱낱이 살펴보시고, 내 마음을 알아주십시오(시편 139:23)" 이것이 마음의 대화이다.
마음의 대화는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실 때도 있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하셨던 말씀을 들어보자. "어찌하여 네가 화를 내느냐? 얼굴빛이 달라지는 까닭이 무엇이냐? (창세기 4:6)" 이세벨이 무서워 광야로 피신한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물으셨다. "엘리야야,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열왕기상 19:13)." 그리고는 "숨을 돌리고 눈을 붙이고 먹고 마신 후에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다른 말해보아라"라고 덧붙이셨다. 그 후, 엘리야는 마음의 대화를 시작한다. 엘리야의 잘못된 인식은 마음의 대화를 통해 바로 잡힌다.
바울은 답답한 심정으로 '몸의 가시'에 대해 언급했다.
"나는 이것을 내게서 떠나게 해달라고, 주님께 세 번이나 간청했습니다(고린도후서 12:8)." 그러한 표현도 십중팔구 마음의 대화에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울의 청을 들어주지 않으셨다.
윌버포스는 여러 해 공직 생활을 하면서도 마음의 대화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느 일요일, 그는 자기 안에 있던 야망의 문제를 해결하며 그 훈련의 가치를 몸소 증명했다. 윌버포스가 그날 마음의 대화를 건너뛰고 다른 일을 했더라면 그의 인생은 완전히 빗나갔을지도 모른다.
윌버포스는 일요일뿐만 아니라 하루를 시작하면서도 짧게나마 마음의 대화를 했다. 윌버포스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격동의 하루로 격양되고 지치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 대화하면서 지극히 중요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가 아침마다 했던 일을 나는 '영적인 리셋' 또는 '마음의 비질'이라고 부른다. 전쟁과 같은 일상에서, 이른 아침과 조용한 일요일에 떼어놓은 짧은 시간 동안 윌버포스는 세상과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통찰과 활력을 얻었다.
윌버포스의 이러한 습관은 나에게 오랫동안 큰 영향을 끼쳤다. 나도 이른 아침에 나누는 마음의 대화에 전념하며 안식을 누렸다. 그가 아니었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었다.

마음의 대화를 무시한 결과
목회 초기였다. 힘이 넘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나에게는 마음의 대화를 위해 홀로 조용히 보내는 시간이 그다지 생산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신문을 읽고, 조찬 모임에 참석하고, 일을 척척 해내는 것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그러다가 피로, 실망, 어리석은 결정, 잘못된 지식이 누적된 후에야 깨달았다. 내 우선순위가 뒤죽박죽이라는 것을.
연륜이 쌓이면서 거의 모든 교단의 목회자들을 상대로 강연하고 가르치는 일을 맡았다. 감사한 일이었다. 조직 경영이나 교회 성장, 설교에 대한 강연을 부탁받는 경우는 드물었고, 내면의 전투가 일어나는 신앙생활의 개인적인 측면에 관해 이야기해달라는 요청이 가장 많았다.
내 강의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먼저는 내면의 대화를 하는 장소에 대해 말하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라고 묻는 것이다.
콘퍼런스에서 리더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반복해서 듣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중에는 걱정스러운 내용이 많다. "탈진 상태이다. 아이디어가 고갈되었다. 얼마나 더 목회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하도 여기저기 불려 다녀서 이젠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뜻이다. 대인 기피증이 생겼다. 가족이 불행하다. 포르노 혹은 성적 공상에 빠졌다. 자식에게 실망이 크다. 하나님을 느낄 수 없다. 더 이상 재미가 없다." 교회에서 활동을 많이 하는 성도들도 똑같이 말한다.
헨리 나우웬은 이 격정을 표현한 적이 있다.  "의욕을 잃고 심술 사납고 뜨뜻미지근한 관료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숱하게 많은 프로젝트와 계획, 약속 들을 안고 가면서도 도중에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나도 이런 면에서는 나우웬처럼 걱정이 지나치게 많은 노인이다. 이 올무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는 내 생각이 단순한 억측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하나님은 물론 자기 자신과도 조용히 마음의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기에 내 싦은 더욱더 깊어진다. 이러한 마음의 대화가 없는 만큼 회복력이나 지속가능성도 부족하기 마련이고, 계속 성장해 나가면서 혹은 깊어지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때에 영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도 없게 된다.
오스왈드 챔버스(Oswald Chambers)는 이렇게 썼다. 
"싸움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의지의 은밀한 공간에서 이기는 데에서 시작한다. 바깥세상에서 먼저 이기고 끝나는 법은 없다. 하나님 앞에서 싸워 이긴 그 사람을 지배하고 다스릴 권세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은밀한 공간에서 하는 마음의 대화, 윌리엄 윌버포스가 일요일마다 실천하던 일이기도 했다.

따로 떼어놓은 시간이 나를 살린다
영적 침체에 빠져 씨름하는 리더들에게 나는 이런 질문을 많이 던진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으로 한 주를 보내는 모습은 어떤 것인가요? 지난 일주일 동안의 활동을 한번 말씀해주세요." 그러면 자신들이 흔히 하는 활동들을 거침없이 말한다. 하지만, 좀처럼 듣지 못하는 대답이 있다. '개인적인 안식의 시간,' 곧 영혼의 성장과 정화를 위해, 마음에 대화를 위해 정기적으로 따로 시간을 낸다는 사람은 참 드물다.
"안식할 때 무엇을 하시나요?" 이따금 받는 질문이다. 틀에 박힌 대답은 오래전에 갖다 버렸다. 나에게 효과가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결과였다. 내가 무엇을 하느냐고? 간단하다. 나로 하여금 항상 새롭게 그리스도께 돌이키게 하고, 성경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일깨우며,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확신하도록 돕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한다. 이런 결과를 얻기 위해 따로 떼어놓은 시간이 있는지 여러 그리스도인에게 물어보면 보통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너무 바빠서요." "이런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도무지 아는 게 없네요." "생각이 너무 많아서 집중이 안 돼요." "저는 외향적인 사람이라서, 혼자서 조용히 반성하는 일은 체질상 맞지 않아요." "그렇게 한다고 뭐 금방 달라지는 게 있어야죠." "지겨울 것 같아요."
모세에게는 회막 있었고, 윌버포스에게는 안식일이 있었다. 그들은 바울이 고린도의 교우들에게 당부했던 말을 몸소 실천했다. 유진 피터슨은 이렇게 번역한다. "여러분 자신을 스스로 점검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이 믿음 안에서 흔들림이 없는지 스스로 확인해 보고,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적당히 지내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을 주기적으로 점검하십시오(고린도후서 13:5)." 주기적인 점검, 곧 마음의 대화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질문이다. 질문은 호기심의 연장이며 주님 앞에서 자신의 영혼을 점검하기 시작할 때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

마음에 대화를 위한 보석 같은 질문들
시인은 "나를 낱낱이 살펴" 달라고(시편 139:23) 기도했다. 나 역시 사람의 내적 공간을 살피고 빛으로 이끌어주는 그런 질문들이 참 좋다. 나는 지난 안식일 이후에 일어난 일들을 반성하면서 마음의 대화를 시작한다. 의미 있는 일은 무엇인가? 교훈과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일과 모든 사람에게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통찰력은 금이나 석유처럼 묻혀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발굴하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다. 바쁘게 활동하는 사람이 멋있게 보이지만 대부분은 깊이가 없다. 금을 채굴하고 석유를 시추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윌버포스가 조용히 안식일을 보내면서 어떤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평소에 마음의 대화를 하는 습관을 기른 덕분에 그는 1801년, 인생의 전환기에 들어섰을 때 끔찍한 실수를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야망은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런 글을 쓰고 있다. "인간은 자기 방에서 가만히 머물러 있지를 못한다. 모든 불행은 죄다 이 한 가지 사실에서 비롯된다." 마음의 대화를 위해 따로 시간을 내지 않는 사람, 그럴 필요를 못 느끼는 사람, 자신은 그런 대화를 할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신을 커다란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내면의 자신과 도무지 사귈 줄 모르는 사람은 재앙을 만나기가 쉽다.

- 고든 맥도날드 -

새글 0 / 30 

검색

  • 완전은 완벽이 아니다-이진경
  • 작성자 : | 조회수 : 172 | 등록일 : 2022.01.10
  •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마 5:48)     원수를 사랑하라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명령을 말씀하신 예수님은 역시나 마찬가지로 불가능해 보이는 명령을 재차 말씀하셨다. “완전하여라.” 그저 완전만이 아니다. ‘하나님처럼’ 그래야 한다는 조건은 가뜩이나 불가능해 보이는 명령을 더욱 더 불가능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유한하고 내재적인 인간이, 감히 어떻게 ..
  • 따로 떼어 놓은 짧은 시간
  • 작성자 : | 조회수 : 234 | 등록일 : 2021.03.26
  • 1801년,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는 영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었다. 영국의 국회의원으로서 대영제국의 노예 폐지를 주도했던 그에게 닥친 영적 위기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바로 정치적 야망이라는 소용돌이였다. 만약 그가 이 위기 앞에서 무너졌다면 19세기 영국의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그 위기는 총선에서 헨리 에딩틴(Henry Addington)이 차기 수상으로 당선되면서 시작되었다...
  • 위대한 설계자/ Billy Graham
  • 작성자 : | 조회수 : 252 | 등록일 : 2021.03.26
  •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기 전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결코 알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이 당신을 지으셨기 때문이다. 당신과 내가 여기 있는 것은 우연이나 알 수 없는 진화의 과정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이 계획을 뒤바꾸거나 변덕을 부려서가 아니다. 창조라는 의도적인 행동으로 우리를 여기 두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 사람들은 온갖 상상을 동원해 하나님에 관한 개념을 만..
  • 불꽃같은 거룩함, 용서하는 사랑
  • 작성자 : | 조회수 : 366 | 등록일 : 2020.11.27
  • 아내와 나는 33년 동안, 리처드 포스터가 적절하게 표현한 대로 "황홀함과 악취가 뒤섞인" 삶을 살아왔다. 아내와 함께해 온 시간은 대부분 즐거웠다. 그러나 갈등의 순간도 있었다. 아내와 내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때는 30대 후반에 찾아왔다. 간음을 저지르지는 않았으나 우리는 상대방에게 크나큰 고통을 안겨 줬다. 슬픈 사실이지만, 나는 때로 지나치게 화를 내서 아내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간통이 죄라는 사실을 몰랐..
  • 성장의 시간, 겨울을 맞이하다
  • 작성자 : | 조회수 : 327 | 등록일 : 2020.11.08
  • 나는 겨울이라는 계절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삶에서 불완전한 것들을 제거하기 위해 행하시는 정화 작업을 겨울을 맞이하는 식물의 세계가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겨울 찬바람의 날개를 타고 추위가 찾아오면 나무들은 잎사귀들을 떨어뜨리기 시작한다. 초록빛 잎들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듯 갈색으로 퇴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 갖기 쉬운 다섯가지 그늘
  • 작성자 : | 조회수 : 456 | 등록일 : 2017.08.02
  • 우리가 그늘보다 빛을 더 많이 드리우고 싶다면 내면의 어떤 괴물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그것들이 만들어낸 그늘을 탐험하고  우리 자신의 영적 생활에 뛰어들 때 찾아오는 변화를 경험해야 한다. 그런 괴물 5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울증으로의 하강의 경험 속에서 그것들과 각각 친해졌다. 1)   자기 정체성과 존재 가치에 대한 불안 많은 이들이 특별히 리더인 경우에 외..
  • 안으로의 여행
  • 작성자 : | 조회수 : 467 | 등록일 : 2017.08.02
  •  우울증의 늪에서 빠져나와 나는 이제 현실에서 리더쉽이라는 우리의 공동의 소명에 관심을 돌린다. "내적 여행을 계속하라, 에고를 지나처 참자아에 이르라, 그러면 자아도취에 빠져 헤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따르는 책임감을 좀 더 늠름하게 간직한 채 세상으로 돌아오게 된다." 우리가 공동체를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맞다면 리더십은 모든 사람의 소명이다. 모든 사람들이 인도를 받아야 하..
  • 영혼의 고통에 다가가기
  • 작성자 : | 조회수 : 443 | 등록일 : 2017.08.01
  • 우울증은 관계 단절의 극단적 상태이다. 우울증은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생명선인 관계성을 끊어 버린다. 이상하게도 내가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 나를 잠깐 찾아왔던 어떤 사람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의 나는 누가 곁에 있고 누가 없었는지도 잘 알 수 없을 정도였느데도 말이다. 호의를 가지고 나를 찾아왔던 그들 그들의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들 대부분의 행동은 '욥의 위안자'와 같았다. 비참한 처지의 ..
12